저희 동네에는 어릴 때부터 낚시하러 다니던 저수지가 하나 있습니다. 평소엔 그냥 동네 사람들이 붕어나 잡으러 오는, 특별할 것 없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작년 늦여름, 몇 달째 비 한 번 제대로 안 오는 가뭄이 이어지면서 저수지 수위가 눈에 띄게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빠지면서 평소엔 절대 보이지 않던 바닥 쪽 진흙땅이 넓게 드러났어요.
처음엔 그냥 진흙탕이 넓어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말, 낚시 포인트를 옮기려고 물가를 따라 걷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진흙 속에 반쯤 파묻힌 채로, 분명 사람이 쌓은 것 같은 낮은 돌담의 흔적이 일정한 간격으로 줄줄이 이어져 있었던 겁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건 그냥 담이 아니라, 나란히 붙어 있던 여러 채의 집터 경계선이었습니다. 방 크기만 한 네모난 공간들이 진흙 아래로 어렴풋이 구획되어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아궁이처럼 보이는 돌무더기도 남아 있었습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근처에서 평생 사신 어르신 한 분께 여쭤봤습니다. 어르신은 담배 한 대를 태우시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원래 이 저수지 자리는 1970년대에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계곡 하나를 통째로 막아 만든 인공 저수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계곡 안에는 원래 스무 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요.
정부에서 이주 보상금을 주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게 한 뒤 둑을 쌓고 물을 채웠다고 합니다. 다만 몇몇 집은 끝까지 보상을 거부하며 버티다가, 결국 물이 조금씩 차오르는 걸 지켜보면서 가장 마지막에 마을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셨습니다. 그중 한 노부부는 떠나기 전날 밤, 마을 한가운데 있던 정자나무 밑에서 오래 살던 마을을 위해 작은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도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발밑에 밟고 있던 진흙이 갑자기 다르게 느껴졌달까요. 저는 그날 이후로 유독 그 자리에 자꾸 눈길이 갔습니다.
물이 조금 더 빠진 다음 주말, 다시 그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이번엔 더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집터 한가운데쯤, 아주 오래된 종 하나가 진흙에 반쯤 박힌 채로 놓여 있었던 겁니다. 녹이 잔뜩 슬어 있었지만 형태는 온전했고, 손잡이 부분에는 삭아서 거의 실처럼 가늘어진 끈이 아직도 묶여 있었습니다.
궁금증을 못 이기고 종을 조심스레 들어 올려 흙을 털어내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정말 희미하게 종소리 비슷한 게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물 위를 스치는 소리였을 수도 있고, 제 귀가 예민해진 탓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잔잔하던 수면 위로 옅은 안개가 훅 끼쳐오는 게 느껴져서, 저는 저도 모르게 종을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뒷걸음질 쳤습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그 저수지 이름을 검색해보니, 예전부터 밤낚시를 하다가 물속에서 은은한 종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와 있었습니다. 다들 근처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물 위로 퍼져서 들리는 거라고 애써 설명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근처엔 절이라고 할 만한 곳이 하나도 없다는 댓글도 함께 달려 있었습니다.
며칠 뒤 낚시 동호회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슬쩍 꺼냈더니, 오래 다니신 한 분이 웃으며 자기도 몇 년 전 새벽에 그 근처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가, 물속에서 은은한 종소리와 함께 아이 웃음소리 같은 게 잠깐 들렸다 사라진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헛것 들었나 보다 하고 넘겼는데, 이번에 제 이야기를 들으니 소름이 돋는다고 하시더군요.
며칠 뒤 비가 내리면서 수위가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전에 딱 한 번 더 그 자리를 찾아가 봤지만, 이미 물이 절반 가까이 차 있어서 집터도 종도 더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수면 위로 잔잔한 물결만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뭄이 심해질 때마다 그 저수지가 다시 그 마을을 세상에 꺼내 보여줄까 봐,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술렁입니다. 요즘 살목지를 소재로 한 괴담이나 공포영화가 화제라던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종소리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