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겨울.
군 생활에 적응한 지 석 달 무렵이 넘어갈 때, 원인 불명의 고열을 알았다.
평소에 잔병치레가 심한 편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가벼운 감기 정도였지만, 40도를 넘어가는 열병은 성인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정신이 몽롱하여 생활관에서 누워 있던 기억은 나지만,
당장 그때가 겨울인지 여름인지는 모르겠다.
몸이 너무 뜨거워서 여름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응급실로 향하는 길에 누군가에게 업혔을 때 찬 바람이 불기도 했으니.
겨울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응급실에 도착하고서 수액을 맞으며 호전되는 중에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
원인 불명의 열이라고.
보통이라면 감기든 뭐든 진단을 내려주지 않는가.
뭐, 기침도 없고 단지 열만 났으니 이상했나 보다.
그렇게 열을 내리고서 다시 생활관에 돌아왔을 때 생활관엔 개인 정비 시간이어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다들 걱정하는 눈으로 날 바라보며, 괜찮냐고 물어보는 중이었다.
팅. 팅.
어디선가 공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이 깔린 밖, 연병장에서 나는 소리인가 싶었으나 그날은 해가 이미 진 날이었다.
인근에 초등학교가 있으니,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겠거니 했으나.
머리가 멍한 와중에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학교는 조금 더 부대와 떨어진 곳에 있으니, 소리가 여기까지 전달될 리가 없으니까.
몸이 아프니, 착각한 건가 싶었고.
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렇게 아픈 몸으로 잠이 들었고, 다음 날 호전되어서 점심에 식당으로 향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사지방을 지나서 우리 생활관을 지나치면 식당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복도를 쭉 따라 우리 1 생활관을 지나는 사이에, 다리가 멈칫했다.
누군가 날 끌어당기는 것처럼 말이다.
목이 빳빳하게 굳고,
조여오는 압박감.
고개를 홱 돌려서 생활관 출입문에 달린 유리창에 시선을 두었을 때.
그 소리가 들렸다.
팅.
팅.
공 소리, 어제저녁에 들었던 소리.
착각한 게 아니다.
무언가 생활관 TV 앞에 선 채로 공을 튀기고 있었다.
그러나 부대원은 절대 아니었다.
축구공도 아닌 낡은 탱탱볼.
떨어질 것 같은 팔로 그것을 가지고 노는 건.
성별 모를 아주 어린 아이였다.
옆에 있던 부대원들이 멈춘 내게 뭐하냐고 묻자,
그제야 보이던 것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누군가는 또 뭔갈 봤어? 라고 물었지만.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까 봐 둘러말했다.
“TV 켜져 있는 줄 알았습니다.”
나만 이상한 건가 싶어서 입을 꾹 닫고 살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부대는 예비군 훈련을 주로 하던 부대였는데,
훈련장 곳곳에 이름 없는 봉분도 많았다.
교장 점검 중이던 선임은 무덤을 지나치며 내게 말했다.
"이름 없는 묘지들인데 그냥 모르는 척해."
이어서 부대 내에 왜 이리 무덤이 많은 지도 이야기해 주었다.
6.25 당시, 피난민들이 부대 내 산을 타고 많이 넘어가고 그랬다며,
"나도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 막사 쪽도 무덤을 밀고 만들어졌다는 카더라가 있더라. 가끔 귀신 봤다는 애들도 있고."
"아. 옛날에 무덤 만졌다가 변 당한 사람도 있다는 부대 전설도 있으니까.“
절대로 무덤을 만지지 말라고 했다.
내가 본 모든 그것들은 그날의 잔상이었을까.
그렇다면, 낡은 탱탱볼을 가지고 놀던 아이도 어쩌면 그 시절에
벗어나지 못한 망자였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