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충남 예산의 저수지 '살목지'를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가 흥행하면서, 그 실제 저수지에 밤마다 사람들이 몰린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저도 호기심 많은 친구들 셋이랑 재미 삼아 비슷한 분위기의 저수지 하나를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간 곳은 정작 화제의 살목지는 아니었습니다. 거긴 이미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린다는 얘기를 듣고, 대신 인터넷 괴담 게시판에서 몇 번 언급된 적 있는 지방의 다른 저수지로 향했습니다. 밤 11시쯤 도착했는데, 이미 저희 말고도 차 서너 대가 주차돼 있었습니다. 다들 비슷한 이유로 온 사람들 같았습니다.
처음엔 다 같이 낄낄대며 사진도 찍고 손전등으로 물가를 비춰보고 하면서 평범한 밤 산책처럼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자정이 넘어가자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물안개가 슬금슬금 피어오르더니 저수지 전체를 얇게 덮어버렸거든요.
친구 중 한 명이 장난 삼아 물가에 서서 영화 대사를 따라 하며 소리를 지르던 순간, 저 멀리 반대편 물가에서 손전등 불빛 하나가 깜빡거리는 게 보였습니다. 처음엔 다른 방문객이겠거니 했는데, 이상하게 그 불빛은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계속 깜빡이기만 했습니다.
누군가 갇혀서 신호를 보내는 건가 싶어 저희끼리 잠깐 논쟁을 벌였습니다. 신고를 해야 하나, 가서 도와줘야 하나 하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저수지를 빙 둘러서 그쪽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십 분 넘게 걸어 도착했는데, 정작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고 불빛도 사라진 뒤였습니다.
대신 발밑에 낡은 신발 한 짝이 물가에 반쯤 잠긴 채로 놓여 있었습니다. 오래돼 보이는 걸로 봐서 최근에 벗겨진 건 아닌 듯했지만, 왠지 모르게 아무도 그걸 만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그냥 서둘러 차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관리사무소처럼 보이는 작은 컨테이너 건물을 지나쳤는데, 불이 켜져 있어서 혹시나 하고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나이 지긋한 관리인분이 혼자 앉아 라디오를 듣고 계셨습니다. 저희가 방금 본 불빛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자, 관리인은 크게 놀라지 않고 그냥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여기 예전부터 그런 얘기가 종종 있었다고, 특히 요즘처럼 살목지다 영화다 해서 사람들이 밤에 몰리기 시작한 뒤로는 더 자주 그런 목격담이 들어온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실제로 저수지에서 사고가 난 적은 최근 몇 년간 없었다고, 그러니 너무 걱정은 말라고도 덧붙이셨습니다.
그러면서 관리인은 흘리듯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이 저수지도 살목지처럼 원래는 계곡 마을 하나를 막아서 만든 거라, 물 밑에 아직 남아 있는 옛날 집터가 몇 군데 있다고, 그 위를 밤에 지날 때 유독 이상한 걸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저수지들이 이 나라에 은근히 많다는 말도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아까 본 불빛과 신발 한 짝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단순한 장난이나 오해가 아니라, 어쩌면 정말 그 물 밑 어딘가에서 누군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서요.
저희는 결국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그곳을 떠났습니다. 차 안에서 다들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희끼리는 그 저수지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습니다. 다만 살목지 이야기나 저수지 괴담이 나올 때마다 그 깜빡이던 불빛이 자꾸 떠오른다는 것만은 다들 인정합니다.
지금도 인터넷에 그날 갔던 저수지 이름을 검색해보면 비슷한 목격담이 심심찮게 올라옵니다. 저희처럼 호기심에 찾아갔다가 이상한 걸 보고 왔다는 사람들 말입니다. 저는 이제 그런 곳은 낮에만, 그것도 사람 많을 때만 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