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전 세대가 이주를 마쳤습니다. 저희 집도 이미 짐을 다 뺐어야 했는데, 마지막에 정리할 게 남아 어쩔 수 없이 철거를 하루 앞둔 그 밤을 텅 빈 단지에서 혼자 보내게 됐습니다.

낮에는 몰랐는데, 해가 지고 나니 그 큰 단지에 불 켜진 집이 정말 한 곳도 없더군요. 가로등도 절반쯤 꺼져 있어서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하루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짐 정리를 이어갔습니다.

자정이 넘어갈 무렵부터 복도 저편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착각인가 했는데, 잠시 후 위층에서, 그다음엔 아래층에서 번갈아 가며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람이 있을 리 없는 빈 단지였는데 말이죠.

무서운 마음에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다 꺼진 단지 안에서 딱 한 집, 몇 동 몇 층인지 가늠도 안 되는 곳에서만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불빛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날이 밝고, 마지막 정리를 도와주러 오신 관리소장님께 지난밤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습니다. 소장님은 놀라지 않고 오히려 옅게 웃으시며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 단지 처음 입주할 때, 다들 서로 잘 모르니까 이사 온 집마다 초인종 누르고 떡 돌리면서 인사하던 풍습이 있었다고, 그게 몇 년은 이어졌었다고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지난밤 소리가 무섭다기보다는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곧 사라질 단지가, 마지막으로 예전 그 시절의 인사를 건네고 간 건 아니었을까. 철거 소리가 울리던 다음 날 아침까지도 저는 그 생각을 떨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