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한동안 연락이 뜸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워낙 장난기 많고 평범했던 친구라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며 약속을 잡았습니다.

만나서는 예전처럼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 친구가 갑자기 말을 뚝 멈추더니, 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 게 느껴져서 저도 덩달아 긴장했습니다.

너 요즘 몸 안 좋지 않냐고, 평소와는 전혀 다른 낮고 진지한 목소리였습니다. 딱히 아픈 데는 없다고 했더니 친구는 몇 초쯤 더 저를 살피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분간 밤늦게 혼자 다니지 말고, 검은 옷은 되도록 입지 말라고요. 이유를 물어도 자세히 설명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그런 게 있다는 말뿐이었죠.

농담으로 넘기고 헤어졌는데, 공교롭게도 그 주 안에 사소한 사고가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고, 멀쩡하던 차 사이드미러가 저 혼자 깨져 있고,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크게 다칠 뻔하기도 했습니다. 매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매번 아슬아슬했습니다.

며칠 뒤 걱정되는 마음에 다시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옅게 웃으며 딱 한마디만 했습니다. 이번엔 그냥 넘어갔으니까 됐다고요. 정확히 무엇을 봤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날의 표정이 떠오르지만, 저는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떤 것들은 몰라야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