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인택시를 몬 지 올해로 22년째입니다. 별의별 손님을 다 태워봤지만, 그날 새벽만큼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겨울 새벽 3시쯤이었어요. 시내를 벗어나 외곽 국도를 달리고 있는데, 가로등도 없는 갓길에 웬 노신사 한 분이 우산도 없이 서 계시더라고요. 정장 차림에 낡은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 이런 곳에 사람이 서 있는 게 이상했지만 일단 태워드렸습니다.
목적지를 말씀하시고는 그 뒤로 한마디도 안 하시더군요. 백미러로 흘끗 보니 계속 창밖만 응시하고 계셨습니다. 라디오 소리도 유난히 지지직거려서 꺼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말씀하신 주소에 도착하니 낡은 담장만 남은 공터였어요. 여기 맞으시냐고 여쭤봤더니 그냥 고개만 끄덕이시고는 요금을 내미셨습니다. 놀란 건 그다음이었어요. 미터기에 찍힌 금액을 1원 단위까지 정확히 맞춰서, 마치 미리 세어둔 것처럼 지폐와 동전을 건네셨습니다.
문제는 다음 날 낮이었습니다. 은행에 갔다가 그 지폐 중 한 장을 내밀었는데, 창구 직원이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하더군요. 90년대 초에 유통 정지된 구권인데 요즘은 보기 힘든 거라고, 어디서 받았냐고요.
그제야 이상해서 그 주소를 다시 찾아가 봤습니다. 동네 어르신께 여쭤보니, 30년 전 그 자리에 있던 집이 화재로 전소된 뒤 지금까지 공터로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집에 살던 노신사 한 분이 화재 당일 새벽, 딸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택시를 잡으러 나갔다가 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함께요.
그 후로도 가끔 그 갓길에서 손을 드는 사람을 봅니다. 하지만 이제는 차를 세우지 않습니다. 다만 이상하게도,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라디오 시보가 꼭 1분씩 늦게 울린다는 것만, 저 혼자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