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점점 군 생활에 익숙해지니, 가위에 눌리는 일은 줄어들었다.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귀인을 만났다.
우리 분대 선임 중에 다른 생활관을 쓰고 있던 선임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정이 있어서 오랜 기간 병상에 있었지만, 결국 돌아와서 군 생활을 함께 보낸 선임은 내 이야기를 어디서 전해 들었는지 처음 보는 날부터 잘 챙겨주셨다.
언젠가 한 번 그 선임에게 물었다.
“왜 잘 챙겨주십니까?”
그 말에 대답 대신 웃기만 하던 선임은 천천히 본인 이야기를 해주셨다.
선임은 선천적으로 그것들이 보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부대원들이 간혹 그런 소리를 하긴 했지만, 믿지는 않았다.
당사자가 말하니 간혹 믿음이 가버렸다랄까.
아직도 장난인지 진실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은 말이기도 하지만.
믿는 편이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 같다.
아무튼, 무슨 호기심이 들었는지 나도 혹시나 보이는 사람인지 물었다.
때때로 기운을 느끼거나, 몸이 피곤해질 때면 어김없이 시야 밖에서만 그림자들이 일렁이는 게 보였으니까.
살짝 기대하던 바는 관철되고 말았다.
선임은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은 것이다.
“아니. 안 깨졌어.”
눈이 깨졌다. 흔히, 그것들을 보는 이들의 영안이 트인 사람의 속된 말이라고 했다.
실망한 내게 선임은 한 가지 덧붙였다.
솔직히 어떤 말을 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경고였던 것 같기도 하고.
조언 같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그것들을 부르는 재주는 호기심에서 나오기도 하고,
넌 지켜주는 존재가 강하니 눈을 가리고 있는 거라고.
하지만 방심은 하지 말고 이상한 낌새가 나면 무시해라.
저 정도였던 것 같다.
이런 담화를 나눈 것은 봄으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로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았다.
다만, 여름이 시작되는 봄의 끝자락에 사건이 하나 생겼다.
부대 내 초소 안에 경계 근무를 서던 주말 오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낡은 선풍기를 틀고서 사수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잘 보고 있어 줘. 잠 좀 자게.”
주말 경계 근무에다가 초소 내부였기에 이런 식으로 가라로 근무를 보는 경우가 간혹 있다.
부사수이기에 그런 선임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 인근을 바라봤다.
보이는 것은 탄약고와 풀숲 훈련장으로 가는 길목, 분리수거장이 전부였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사방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내 시야에 무언가 이질적인 게 걸렸다.
우리가 있던 초소는 비교적 만들어진 지 5년은 넘은 신식,
한 40~50m 정도 건너, 풀숲에, 예전에 사용하던 구형 초소.
그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철거는 하지 않아서 대개 흉물로 여겨지던 건물이 유난히 오늘따라 밝은 대낮인데도 꺼림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해서 그곳을 쳐다본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으니까.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군복을 입은 형태로 보아선 막사 내 누군가 몰래 그곳에 들어간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군복이 좀 달랐다.
색이 다 빠진 녹색처럼 보여서 인민군은 아닐까 싶었으나, 부산에서 저런 옷을 입고 활보하는 사람은 없을 터이고, 자세히 바라보니 개구리 군복인 것 같기도 했다.
시절 지나간 옷차림에 너무 놀란 나머지, 신원 미상의 거수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고 있던 선임을 애타게 깨웠다. 신경질을 부리긴 했지만, 선임도 머지않아 얼빠진 얼굴로 그곳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박 상병님. 저기 저거 뭡니까?”
“나도 몰라. 씨.”
다급한 내 부름에 선임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서둘러 지휘통제실로 직통 전화를 걸었다.
“거수자 미상의 인원 구 초소에 있습니다.”
그래, 우리는 동시에 그곳에 있는 무언가를 포착한 것이다.
서둘러, 확인을 위해서 파견된 5분대기 조 인원들이 구 초소로 올라갔으나.
곧바로 내려왔다.
모두 허탈한 얼굴과 잔뜩 성난 얼굴로 물었다.
그중 대기조장이 우리에게 볼멘소리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박 상병님.”
선임과 나는 더위 먹고서 잘못 봤다며,
연이어 미안하다고 하며 상황을 일단 넘겼지만.
모두가 부대로 복귀하고서, 우리는 서로 본 것을 이야기했다.
“저는 개구리 군복을 봤습니다.”
선임은 그런 내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군복? 난 창문에 얼굴 보고 놀랐던 건데. 목매단 줄 알고.”
“네? 아.”
그러고 보니, 군복의 위치가 이상하리만큼 천장을 향해 있었다.
차마 그 위까지는 보지 못했으나, 선임의 말대로라면.
누군가 목을 매달았던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때, 같이 근무를 섰던 선임이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불안해 보이는 눈으로 내게 부대 내에 전해져 오는 전설을 알려줬다.
“거기서 밤에 근무하는 상근병들이 새벽에 어떤 할머니가 벽을 통과하는 걸 봤다던데.”
“벽을 말입니까?”
“어. 산 아래라서 밤만 되면 귀신 봤다는 애들 많다고 하더라. 저번에 새벽에 5대기 나갔던 적 있잖아. 그때도 그랬었대.”
그리고 선임은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또 다른 전설에 대해 말했었다.
“구 초소가 왜 없어진 줄 알아?”
“모르겠습니다.”
“우리보다 더 오래된 선임들. 그러니까 10년도 넘은 일일 건데. 거기서 자살한 사람 있어서 그렇대. 왜 우리 부대 자살 감별에 유독 예민하잖아. 상부 지침이어도 그렇지.”
그러고 보니 당연하게 생각해 온 그런 규칙들이 언뜻 보면 이상하리만큼 빡빡하게 느껴졌지만, 선임 말은 믿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군대는 그럴 텐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였다.
쿵!
우리가 서 있던 초소 창문을 누군가 세차게 때린 소리가 났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새가 부딪힌 것도, 돌이 던져진 것도 아니다.
다만, 분명 닫혀 있던 구 초소의 창문이 기이할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
우리는 그제야 우리가 무언가 홀렸단 걸 깨닫고 선 침묵으로 땅만을 보다가,
다음 근무자 교대가 오자마자 부대 내로 서둘러 복귀했다.
복귀 후에도 공포에 물든 뇌가 진정되지 않았다.
그날 본 건 정말 뇌가 일으킨 착각일까.
아니면, 훈련소에서 보았던 목 잘린 개구리 군복 차림의 군인처럼.
진짜 그것이었을까.
하는 수 없이 분대 내 선임을 찾아갔다.
귀신을 본다 던 분대 내 선임은 그 일을 듣더니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다음부턴 모르는 척해."
아, 정말 그것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