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한 십오 년 전인가, 그때 한창 야간 영업용 택시 뛰고 있을 때 얘기다. 딸아, 아빠 말하는 거 그대로 잘 좀 적어봐라. 그날이 아마 시월 말이었을 거야. 날이 꽤 쌀쌀해서 히터를 틀었는데도 이상하게 차 안이 계속 서늘했거든. 새벽 한 시쯤인가 청량리역 앞에서 손님을 하나 태웠는데, 강원도 고한 쪽까지 가자는 거야. 그때 돈으로 십오만 원 준다길래 얼씨구나 하고 출발했지.
그러니까 그게, 고한 들어가는 입구 쪽에 다 왔을 때였어. 그때는 가로등도 거의 없고 길도 좁았거든. 산길로 한참 들어가는데 길가에 웬 남자가 혼자 서 있더라고. 검은색 롱코트 같은 걸 입었는데, 처음엔 그냥 사람인 줄 알았지. 근데 차가 가까워질수록 위화감이 들더라고. 그 사람 키가 너무 컸어. 우리 택시가 소나타였는데, 앉은자리에서 보니까 그 사람 허리가 내 눈높이에 있더라고.
길 한복판은 아닌데 차가 지나가기에 너무 아슬아슬하게 서 있길래, 창문을 살짝 내리고 소리를 좀 질렀어. 어이, 아저씨! 위험하게 거기 왜 서 있어요! 하고 말이야. 근데 내 목소리를 듣더니 그게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데, 그 순간 몸이 쑥 하고 위로 올라가더라고.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옆에 있는 낙엽송 나무 높이만큼 커지는 거야. 얼굴은 안 보이는데 시커먼 그림자가 나를 위에서 짓누르는 기분이 들었어.
너무 놀라서 브레이크를 콱 밟았는데, 아까 들렀던 주유소 영감이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나더라고. 이 동네는 밤에 길 가다가 키 큰 놈이 보이면 절대 눈 마주치지 말고, 아는 척도 하지 말고 그냥 뒤로 물러나라고. 그때는 그냥 노인네가 겁주는 줄 알았지. 근데 그게 한 발짝 차 앞으로 다가오니까 이번에는 내 차 앞유리 전체가 그 시커먼 자락으로 확 가려지더라고. 소리는 하나도 안 나는데 숨이 턱 막혔어.
아, 그리고 그때 진짜 이상했던 게 하나 더 있는데, 차 헤드라이트가 그쪽을 비추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 사람 그림자가 불빛 반대 방향이 아니라 내 차 쪽으로, 그러니까 빛을 거슬러서 길게 뻗어 있더라고. 그 그림자가 차 안으로 스윽 밀고 들어오는 걸 보고는 정신없이 후진 기어를 넣었어. 백미러도 안 보고 그냥 고개 숙인 채로 핸들만 꽉 쥐고 계속 뒤로 뺐지.
한참을 그렇게 후진으로 내려오다가 겨우 큰길로 빠져나왔어. 서울 올라오는 내내 차 지붕 위에서 '드득, 드르륵' 하고 손톱으로 철판 긁는 소리가 들리는데 미치겠더라고. 집에 오자마자 차를 확인해 봤는데, 지붕이 아주 가관이었어. 누가 밖에서 밟은 게 아니라, 차 안쪽 천장에서 밖으로 밀어 올린 것처럼 철판이 군데군데 뾰족하게 솟아올라 있더라고. 정비소 가니까 사장도 이런 건 처음 본다며 고개를 젓더구나.
그 뒤로는 아무리 돈 많이 준대도 강원도 쪽 야간 콜은 절대 안 잡는다. 지금도 가끔 밤에 손님 없을 때 백미러를 보면, 뒷좌석이 아니라 내 머리 바로 위 천장에서 시커먼 손가락 같은 게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금방 눈을 돌려버린다.